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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배우며 : 무엇을 하려고 하는 인생인가 - 대안교육잡지 민들레 (2017-6-20)

Article, News

by 큰구름 2019. 10. 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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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에 실린 글입니다. 

현재 애즈원 스즈카 커뮤니티에서 생활하고 있는 박진순(찐짱)이 애즈원과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무엇을 해 나가려고 하는지 담백하게 적은 글입니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 인생인가

우동사와 스즈카커뮤니티, 그리고 새로운 사회

 

글쓴이 박진순

인천 검암의 주거공동체 우동사 멤버로, 인간의 본성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배우기 위해

일본의 스즈카 커뮤니티에서 1년 3개월째 유학 중이다.

발행일 2017.6.12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로는 좋은 교사가 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백화점 점원, 사무실 직원, 쇼핑몰 판매원 등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며 이십대 초반을 보내다가, 스물다섯에 마음을 딱 먹고 공부를 ‘빡세게’ 해서 스물여섯에 교대에 들어갔다. 뒤늦게 도전 한 만큼,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지, 될 수 있다, 다짐하며 열심히 대학을 다녔다. 그리고 서른하나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꿈꾸어 오던 것들을 이제 펼치기만 하면 되겠다, 하고 희망에 넘쳤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서보니 사정이 달랐다. 내가 가진 교사로서의 역량도,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인격도, 머릿속에서 그리던 것과 너무 도 멀었다. 이상적인 교사상을 그리면 그릴수록 괴로움의 폭도 커졌 다. 매일 교실에서 아이들에 대한 감정이 파도를 쳤다. 아이들에게 버 럭 화를 내고 난 후엔, 미안함과 후회와 자책이 뒤섞여 한동안 스스로 를 괴롭혔다.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었지만 후회하고 결심하는 것만 으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연수를 열심히 찾아다녔고, 교육 관련 책을 읽었다. 성공적인 학급 운영 사례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면서도 수 업을 훌륭히 해내고 학급운영 역시 성공적인, 그런 ‘좋은’ 선생님은 어 떻게 하면 될 수 있는가, 알고 싶었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했다. 한편, 내 안에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었고 진심으로 아이들의 행복과 성장을 바랐다. 일 년 동안 아이들과 교실 안팎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서로 통한다고 느낀 순간들도 많았다. 학 부모들과의 관계도 비교적 좋았다. 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로부터 사 랑받고, 지지받았다. 그런 것들로 스스로를 위안하며 학급문집을 공 들여 만들거나 매주 학급신문을 내거나 아이들과 텃밭을 가꾸거나 교실에서 동물을 키우거나 함께 학교 밖 체험을 나가거나 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자면, 그런 활동들은 그저 흉내 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늦게까지 교실에 혼자 남아 일하면서 ‘그나마 나는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것으로 자기를 위안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스스로도 이 해하기 어려운 반응들이 내 안에서 불쑥불쑥 일어났다. 분명히 내가 어른이고 힘도 더 세고 심지어 선생님인데, 아이들에게 뭔가 무시당 한 것 같은 억울함이 올라왔다. 나는 꼰대 같이 굴었다. 1학년 담임을 맡은 해, 아이들에게 주체하지 못하고 화를 낸 어느 날, ‘아, 내가 이런 인간인가’ 하고 더 견디지 못할 만큼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좋은 선 생님이 되고 싶다, 그것만으로는 결국 좋은 선생님이 되지 못했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살기(근데 뭐가 문제지?)

교사 생활을 시작할 즈음에, 정토회라는 불교단체를 만났고 일생을 함께할 벗들도 만났다. 불교 사상을 공부하면서 여러 활동이나 프로 젝트를 같이 해나갔고, 함께 이것저것 작당들을 해가며 긴 시간 인생 을 논했다. 2년 반의 시간을 거쳐, 친구 여섯이 ‘귀촌’을 화두로 도시 변두리에 모여 공동주거를 시작했다. 지금과는 다른, 보다 나은 세계 에 대한 열망을 실천으로 내딛는 첫걸음이었다. ‘우리동네사람들’이 란 이름을 붙이고 함께 살기 시작한 일 년 반 동안, 귀촌 후보지를 답 사하고 워크숍 등을 통해 이야기해 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다가 결국 시골이라는 장소에 집착하기보다는,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넓고 깊게 이어가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주변에 공동주 거지가 하나 둘 늘어나고, 사람도 늘었다. 그러면서 처음엔 무리 없이 함께 해왔던 일들이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한정된 방식이었다는(누구 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 나에게는 점점 분명 해졌다. ‘친한 관계’라는 건 처음 우동사가 시작되고 유지되는 큰 동력 이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므로,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던 그때 에도 이미 그 안에는 갈등의 씨앗이 들어 있었다. 5년차에 접어들면서 공동주거 공간이 다섯 채로 늘었다. 이래저래 관계 맺는 사람들이 줄잡아 50명이 넘었고, 그 사이 새롭게 들어오거 나 나간 사람도 제법 있었다.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은 친구도 있고,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나왔다. 그 다음 한발을 내딛을 곳이 필요 했다. 놀이이자 활동 삼아 해왔던 ‘논데이’라는 농사체험 프로그램에 힘을 실었다. 동네에서 커뮤니티 펍도 문을 열었다. 성과나 전망이 보 이는 단계는 아니었지만, 청년들 나름의 새로운 삶의 실험이라는 측 면에서 매스컴을 통해 여기저기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분명히 내가 생각하고 결정하 고 움직이고 있는데도, 어느샌가 뭔가에 떠밀려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억누르려 하면 할수록, 미움과 원망이 꾹꾹 눌러 틀어막은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뭐든 다 내줘도 안 아까울 정도로 좋 아하는 친구들과, 나름의 분명한 결의를 가지고 삶을 걸고 도전한 일 이, 어째서 이렇게 마음속에서 삐걱대는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 인가? 알 수 없고, 답답했다. 이대로는 계속할 수 없겠다고 느꼈다.

스즈카 커뮤니티와의 만남

교사가 된 지 4년, 우동사에서 함께 산 지 1년 반쯤 되었을 때 일본의 스즈카 커뮤니티( 공식 명칭은 ‘애즈원 네트워크 스즈카 커뮤니티’ 다. 줄여서 애즈원 스즈카 커뮤니티 혹은 스즈카 커뮤니티라 부른다.)를 알게 되었다.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여름방학 때 전국 교사 세미나를 하러 전주에 갔는데, 거기서 만난 선생님 한 분이 겨울에 스즈카 커뮤니티로 탐방을 간다며 일본어가 능숙한 내게 통역 도 할 겸 함께 가길 제안했다. 당시 우동사에서는 여기저기 워크숍을 다니거나 학습모임을 하면서 참고할 모델을 찾고 있던 때라, 마침 좋 은 기회다 싶었다. 스즈카 커뮤니티에서 보낸 3박4일은 짧지만 아주 깊은 인상을 남 겼다. 평범한 공업 소도시에 백 명 넘는 사람들이 모여, 세상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대단히 강력하지만 아주 조용하고 자연 스러운 힘이었다. 그 실험의 내용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흔들 었던 건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처음 만났는데도 처음이 아닌 듯한 친밀함을 이곳 사람들에게서 단번에 느꼈다. 특히, 앞에 나 서지 않고 담담하고 가볍게 식사를 준비하고 정리하는 마을 사람들이 주는 울림에, 다시 이곳을 찾아오게 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다음 달에 한국에서 열린 사이엔즈 스쿨*의 애즈원 세미나(당시 마이라이프 세미나)에 우동사 친구들 몇몇과 함께 참가했다. 그리고 그 다음 여름방학엔 두 번째 코스인 ‘자신을 알기 위한 코스’에 참가했다. (*사이엔즈스쿨 : 스즈카 커뮤니티의 기반을 만드는 주요 기관 중 하나로, 인간의 성장을 돕기 위해 설립된 NPO 법인이다. 안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신을 마주하며 ‘자신의 존재’나 ‘사람이 산다는 것’,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대해 근본을 탐구하는 8개의 코스가 있다. 한국에서는 강화에 있는 사이엔즈 스쿨 한국사무국에서 세미나 및 코스를 매년 2~4회 개최하고 있다. ) 기억에 남는 건 코스 도중 나도 모르게 ‘사실 나는 선생이 되고 싶은 게 아니었어!’ 하고 외친 장면이다.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짓눌러두었 던 속마음이 솔직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일까? 그래도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하고, ‘교사생활을 한다’는 전제로 이런저런 선택을 저울질하고 있던 자신을 알아차렸 다. ‘왜 교사를 계속하려는가?’ ‘그만둔다고 했을 때 무엇이 걸리는 가?’라는 물음에서, 돈과 부모님을 걱정하고 있는 자신을 만났다. 스 스로도 의외였다. 그렇다면, 그런 거라면, 정말 그만둬야겠다, 생각했 1 공식 명칭은 ‘애즈원 네트워크 스즈카 커뮤니티’ 다. 줄여서 애즈원 스즈카 커뮤니티 혹은 스즈카 커뮤니티라 부른다. 2 스즈카 커뮤니티의 기반을 만드는 주요 기관 중 하나로, 인간의 성장을 돕기 위해 설립된 NPO 법인이다. 안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신을 마주하며 ‘자신의 존재’나 ‘사람이 산다는 것’,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대해 근본을 탐구하는 8개의 코스가 있다. 한국에서는 강화에 있는 사이엔즈 스쿨 한국사무국에서 세미나 및 코스를 매년 2~4회 개최하고 있다. 이듬해 2월, 교사생활 5년 만에 사직서를 냈다. 그 후 2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코스에 참가했고, 잘 모르고 있던 자신을 만나는 일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우동사에서, 무엇이 왜 그토록 괴로웠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것도 같았다. 그 러나 코스에서는 시야가 열린 듯 환해졌던 것이, 안타깝게도 일상으 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삶의 테두리 안에서는 같은 패턴의 일들이 되 풀이되었다. 그러나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은, 코스 안에서의 이해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변화였다.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 보다 나은 사회를 열망했고, 실천을 통 해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런 생각이나 말 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헛헛하게 느껴졌다. 그건 어쩌면 학교에서도 우동사에서도 똑같이 맞닥뜨렸던, 구호만 있고 ‘빈껍데기’에 불과했던 자신의 현실을 똑바로 응시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대 로는 사회를 바꾸기는커녕, 스스로 만들어둔 장애물에 걸려 제자리를 헛돌 뿐. 코스를 통해 생각이 약간 전환되고, 다시 일상은 일상대로 도 전하는 식의 반복으로는 더 나아갈 곳이 없다, 하고 현실을 인정했다. 재작년 12월, 사이엔즈 스쿨의 심화 코스인 ‘사회를 알기 위한 코 스’에 참가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데도, 무언가 를 끊임없이 ‘하려고 하는’ 자신을 일단 내려놓기로 했다. 짧은 일생을 통해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세상의 규칙, 질서 같은 바깥의 요 인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인 인간으로 태어나 살고 있는 나의 안에서 는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먼저 분명히 안 다음에 움직 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시급한 것을 하기로, 그것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에 나를 두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모든 것을 제 로로 만드는 심정으로 우동사를 떠나 스즈카로 왔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스즈카 커뮤니티는 나고야에서 전철로 한 시간쯤 떨어진 미에 현 스 즈카 시에 위치하고 있다. 다툼 없는 행복한 세계를 현실에 만들고자 하는 시도로, 2000년 말부터 17년째 연구와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당 시 스즈카에 모여든 사람들은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짧게는 10년 길 게는 30년 넘는 시간 동안, 이상사회를 만드는 데에 인생을 걸어온 사 람들이다.(야마기시공동체 : 1950년대 초 일본의 야마기시 미요조라는 사람의 제창으로 시작된 공동체. 1953년 교토에서 야마기시회가 결성되고, 사람들이 모여 그 사상을 실현할 생활공간을 양계장과 함께 이룬 것이 야마기시즘 최초의 실현지이다. 현재 일본 30여 곳과 한국, 스위스,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퍼져 있다.) 

2000년 즈음, 야마기시 공동체 안에서 자신들이 실현하고 자 했던 이상사회의 한계를 느낀 세 가정이 스즈카라는 지역으로 이 주해, 정말 자신들이 바라는 사회를 제로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자 했다. 2001년부터는 이에 찬동하는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어 ‘하나의 사회’를 만드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스즈카는 인구 약 20만으로 도시와 농촌이 뒤섞인 소도시다. 그곳 의 평범한 주택가,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금방 모일 수 있는 거리에 커 뮤니티와 관계하는 사람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그들이 사는 곳 가운 데쯤에 스즈카 컬쳐스테이션이 있는데, 이곳은 커뮤니티와 관련된 여 러 기관들을 품으며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이들도 각자 직장에 다니면서 남은 시간에 모여 함께 공부 하는 방식으로 연구와 활동을 시도했으나, 한계가 분명했다. 생활의 중 심을 ‘소득’이 아니라 ‘본질의 연구’와 ’성장’에 두기 위해, 자신들이 함 께 할 수 있는 사업을 여러 분야에서 시도했다. 초창기 시작했던 우동 가게, 보육원, 인력 파견업, 폐기물 운반업 등의 사업이 지금은 사라지 거나 축소되었다. 무엇이든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관계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같이하는 동료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 는 현상을 마주하고는, 몇 번이고 ‘제로에서부터’ 하고 백지로 돌렸다

스즈카팜에서 일하며 공동체를 경험해가고 있다

지금 자리를 잡은 대표적인 경제 사업은 ‘어머니도시락’이라는 도 시락 가게와 ‘스즈카팜’이라는 농장이다. 농장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지역의 직판장과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공급되기도 하고, 판매용으로 는 부적합하나 맛과 선도에는 이상이 없는 농산물을 도시락 가게에 납품하는 등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도시락 가게는 60명 정 도의 직원이 일하며 하루 천 개 이상의 도시락을 스즈카 시와 인근 지 역에 배달하고 있다. 이 두 사업은 사람이 성장해 나가는 기반으로, 커뮤니티의 시도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또 하나의 실험이다. 어머니도시락은 사장도 없고(사장이란 직함이 있으나 대외적 역할을 위한 보직이다), 명령도 규칙도 책임도 없이 ‘사람 안에 있는 것’으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회사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 저녁 도시락 배달 사고 일화는 유명하다. 어느 날 배달을 맡은 A씨는 배달 시간을 30분 남기고 도시 락 서른 개를 엎질러버렸다. 그는 바로 도시락 가게의 단체 채팅방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했다. 누군가가 바로 응답했다. 마침 저녁 준 비를 하던 시간이니 각자 집에서 밥과 반찬을 갖고 모여 새로 도시락 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일단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순식간에 밥과 반찬을 든 사람들이 도시락 가게로 모여들었다. 결국 제 시간에 도 시락을 새로 만들어 배달까지 무사히 마치고는, ‘아, 재미있었다’ 하고 모두 기분 좋게 헤어졌다는 이야기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맡은 사람에게 책임을 따지지도, 규칙이나 명령으로 지휘하지도 않는 다. 다만 눈앞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것을 함께 해결하는 쪽으로 사람 들의 지혜가 모인다. 도시락 가게는 ‘회사를 위한 사람’이 아닌 ‘사람 을 위한 회사’를 지향한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사이엔즈 스쿨에서 진행하는 일주일간의 코스에 참가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을 회사 경영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직접 돈을 벌 지 않는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받쳐주거나, 이곳에 유학 온 학생들을 지원하는 역할도 한다. 개인이나 가족 단위의 소유가 당연시되고 있 는 것이 사회 현실이지만, 이곳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관계’라 는 화두에서 출발해 구성원 중 80명 정도가 하나의 공동체 경제를 시 도하고 있다. 나와 우동사 친구들을 비롯해 이곳에 유학 온 학생들은 도시락 가 게나 팜 등에서 일하는 이외에, 공부모임, 연구회, 미팅 등에 나가는 것으로 주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코스에 참여하면서, 코스에서 알아차린 것을 다시 일상에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나간 자율성으로 운영되는 조직을 실험하는 어머니도시락다. 이들이 배우려고 하는 건,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대해 ‘알아가는’ 작업이다. 그러나 ‘알아가는’ 것은 자신의 현실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맨얼굴의 자신을 알아차려가는 일상은 유학생들에게 중 요한 축이다. 굳이 이곳을 선택하여 ‘알아가는’ 작업에 온통 몰두하고 있는 유학생들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응 원을 받고 있다.

자율성으로 운영되는 조직을 실험하는 어머니도시락가게

어찌 보면 이곳에서 가장 혜택받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삶이 있 겠거니, 그걸 해야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내 생각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정말로 인간답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그 시작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만들어내는 사 회와 그 사회 속에서 길러지는 인간은 어떤 관계인가 등 근원적인 물음을 마주하는 것, 그리고 자기 생각으로 결론 내리지 않고 끝까지 ‘알 아가는’ 작업. 지금은 우선 거기에서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 각한다. 사람이 사회를 만든다고 생각해왔던 것에도 최근 변화가 생겼다. 그 반대의 순서로, 사회에서 사랑받으며 성장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그 사회의 마음을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본심을 보지 못하게 방해하는 관념들이 걷어지면, 그 아래의 마음은 자유롭게 뻗어 성장 한다. 그렇게 누구나 끝없이 성장하며 본심으로 살 수 있도록, 서로의 환경을 만들어나간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그런 사회 속에서 자 연스럽게, 억압받지 않고 쭉쭉 자유롭게 성장한다. 모두가 바라는 새 로운 사회는, 그렇게 열리는 것 아닐까. 누구나 본심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자기 안에서부터 이루어가는 길에 대한 탐구가, 담담하고 가볍게 오늘도 이어진다

출처 :  민들레

2017년 6월, 격월간 민들레 111호 <뉴미디어 시대에서의 '읽기'>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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