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즈원 스즈카 커뮤니티 내관프로그램 참여자 인터뷰
9월의 세 명의 친구들이 일본 스즈카에서 내관 프로그램(이하 내관코스)에 참여하고 왔습니다. 내관은 차분히 자신의 인생을 마주하며, 객관적으로 자신의 성립과정을 알아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가까운 주변사람들로부터 영향을 주고 받은 것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으로서 자신에 대해 알아갑니다.
내관을 하며 느끼고 깨달은 소중한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다른 분들과도 나누고 싶어 인터뷰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세 명의 내관코스 참여와 체류 이야기를 6회에 걸쳐서 소개합니다.
금자 이야기 2 : 사이엔즈 스쿨 연수프로그램 해보고
(* 편집자주 : 사이엔즈스쿨 연수프로그램(이하 스쿨연수)은 사이엔즈메소드를 배우고 익히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스쿨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스즈카커뮤니티의 기반 위에서 직장연수와 일상미팅, 코스 등을 통해 사이엔즈메소드를 익히는 장이다.)
연수프로그램의 일상은 어땠나?
크게 세 가지를 중심으로 지냈다. 첫 번째는 ‘어머니 도시락’이라는 도시락 가게에서 직장연수를 했다. 그리고 매일 일상을 돌아보는 미팅을 했다. 마지막으로 살펴진 것들을 매일 블로그에 정리했다. 그런 흐름을 통해, 아침에 눈 떠서 자기 전까지 쭉,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느낌으로 지냈다. 어떤 장면에서든지 이걸 내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집중해서 보냈던 것 같다.
집중해서 보여졌던 것들이 있나?
자잘하게 꽤 여러가지가 있다.
▷ 직장연수, 도시락 가게에서 : ‘이런 건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혹은 ‘말할 수 없다’
직장연수의 일환으로 매일 아침부터 점심 경까지 도시락가게에서 일하고 직장미팅을 했다. 미팅에서 디에고가 한 이야기가 좀 인상적이었다. 내가 판매용 반찬 랩핑(Wrapping)을 하고 있었다. 디에고가 와서 ‘금자, 이 작업 좋아해?’ 라고 물었다. 내가 ‘응, 좋아해’ 답하고, 근데 왜 물어보냐고 디에고에게 물었다. ‘어제도 하는 걸 봤는데, 오늘도 하는 것 같아서’ 라고 답했다. 그때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지 궁금했나보다 싶었다. 나중에 미팅자리에서 디에고가 그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은 금자가 하는 게 좀 느리게 보여서 자기가 하겠다고 바꿀까’ 생각했단다. 그런데 ‘상대가 좋아하는 일이니 계속 하도록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디에고가 ‘사실은, 금자가 좀더 빨리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왜 안꺼냈을까’ 말했다.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두는 게 좋다. 느리다고 말하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말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에서 하고싶은 이야기를 감추는구나. 디에고가 ‘미팅에서 그렇게 한번 꺼내고 나니까, 다음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디에고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나한테도 막혀있는, 꺼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꽤 있겠구나 싶었다. 사소하게.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툭 묻어놓고 어떤 인상으로 남겨두고 지나가는 것들.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쌓이면 무의식에서 그 사람에 대한 경계가 세워지는 것 같다. 그런 걸 더 검토해보고 싶다.
▷ 애즈원하우스에서 생활하며 : 표정이나 말투를 보고 판단하고 '그 사람이 그렇다' 라고 사실화한다.
애즈원하우스라는 커뮤니티 하우스에서 지냈다. 애즈원하우스 2층짜리 공동주택으로 1층은 아카데미생들이 쓰고, 2층은 커뮤니티 멤버들이 주로 사용한다. 방문객들이나 연수자들이 오면 주로 2층에 체류한다. 도착한 다음날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공용 주방에 갔다. 연수생용 식품 두는 곳에는 맛없는 커피, 내가 안좋아하는 커피가 있고, 커뮤니티 멤버들이 식품 쪽에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가 있었다.(연수생용 식품두는 곳은 따로 구분되어 있다). 마침 커뮤니티 멤버인 미에상이 있어서 커뮤니티 멤버 쪽의 커피를 가리키며 ‘이거 마셔도 되냐’고 물었다. 미에상이 ‘여기꺼는 커뮤니티 멤버용이야’ 라며 연수생들 먹는 커피가 따로 있다고 안내해주었다. 내가 ‘그거 말고 커뮤니티 멤버들 먹는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했다. 듣고는 미에상이 한번 더 ‘여기 것은 커뮤니티 멤버용이니 안먹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듣고는 그럼 조이(커뮤니티 멤버들이 식료품 생활용품을 받아쓰는 곳)에서 이걸 받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것은 조이에 가서 마미(조이의 운영자)에게 물어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듣고는 꽤 ‘정겹지 않다’고 느꼈다. 표정이나 말투도 무표정하고, 워딩도 딱딱하고, 좀 차가운 느낌으로 남아있었다. 내가 이렇게 원하는 것을 재차 물어보는 것을 미에상이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미에상이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와서 ‘조이에서 커피 받았나’ 물어봤다. 내가 부러 가보지는 않았다고 했더니 ‘이거 선물이야’라고 하면서 내가 어제 먹고 싶다고 했던 커피를 통에 덜어서 전해주었다.
아 그때 뭔가, ‘미에상이 이 상황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구나. 판단을 사실화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어떤 자신에게 남은 인상으로 판단하고 기억에 담는. 그렇게 되면 두 번 다시는 같은 걸 안물어볼 것 같다. ‘여기 바나나 먹어도 되요’ 라던가. 그런데 그 장면이 실제 미에상이 어땠는지는 모르는데 나에게 사실화되어서,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파악하고 있던 자신이 좀 놀라웠다. '아, 내 생각이구나' 이런 자각이 없었구나.
그런 장면들이 곳곳에 있었다. 어떤 사람의 표정, 말투, 워딩을 듣고 그걸 토대로 사실화시키는 내 안의 뭔가 매커니즘이랄까? 그런 게 있구나 알아차려졌던 장면이었다. 그 후로 어떤 행동을 보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이런 거 아닐까’ 해석하는 게 좀 없어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툭 떨어져나간 느낌. 그게 좀 개운한 느낌이다. 그리고 생활도 편안한 느낌이 있다.
▷ 일상화레슨 미팅 : 자신의 관점이 점점 날카롭게 보여오다
매일매일 일상화레슨이라는 미팅을 했다. 일상화레슨은 자신이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느낌의 미팅이었다. 일상을 보내며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을 꺼내서 함께 살펴보는 방식으로 한다. 한국에서 연수를 위해 가 있는 세 명(정인, 연오)과, 스쿨에서 듣는 입장으로 세명이 참여했다. 총 여섯 명이서 매일매일 미팅을 하며 각자 보고 듣고 느낀 것, 생각한 것을 검토했다.
어떤 한 장면을 꺼내서 이야기하면 여러 각도로 질문이 들어온다. ‘만약에 이러면 어떨 꺼 같아?’ 라는 식으로… 그런 질문을 통해 내가 갖고 있는 관념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점점 날카롭게 보이는 느낌. ‘이런 질문 신선한데’ 라고 할 정도로 전혀 생각치 못한 관점으로 질문을 받으니, 그게 재밌더라. 같이 살펴보는 맛이 있었다.
▷ 연구소 살롱에 참여 : 본래의 사람과 사람, 행위를 받는다
연구소에서 여는 ‘살롱’에도 참여했다. 살롱에서 ‘본래의 사람과 사람은 행위를 받고 있다’라는 주제로 텍스트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행위를 받고 있다’라는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미에상이 나에게 커피를 줬다.’ 라든가 ‘엄마가 나에게 이런이런 걸 해줬다’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받은 것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게 기쁨일까?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본래의 인간과 인간이 행위를 받고 있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뭔가를 받는다’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살롱에서 살피면서 조금 관점이 바뀌었다.
내가 물을 마시고 싶다. 바로 앞에 컵이 있고, 정수기에 물이 있다. 컵이 있고 물이 있음으로써 내 욕구가 채워진다. 누군가는 컵을 만들고 싶은 기분이 있다. 그럴 때 그걸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있어서, 만들고 싶은 기분이 실현된다. 어떤 ‘기분’이 실제로 ‘만든다’ 행위로 실현된다. 직접적으로 해받는 느낌이 아니어도, 사실은 일상이 전부 해받는 위에서 이루어지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보니 ‘미에상이 커피를 준다’, ‘엄마가 운전을 해준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받은 것 뿐 아니라, 그렇지 않게 느껴지는 것에서도 그냥 늘 받고 있구나 느껴졌다.
그런 것들을 살롱에서 살펴보고, 다음날 도시락 가게에서 일을 했다. 일하는 중에 펠릭스가 청소하는 시간에 ‘조또 큐케(잠시 휴식)’ 하고 말하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아, 펠릭스가 쉬고 싶은 마음이 있고, 정말 쉴 수 있다’ 이런 느낌이 들고 그게 되게 기쁘더라.
평소 내 습관대로라면 펠릭스가 ‘조또큐케(잠깐 휴식) 하고 쉬면, 그저 쉬는 행위로 보이고. '펠릭스가 쉬니까 청소는 내가해야겠구나' 상황을 파악하고 이렇게 마무리될 것 같다. 특별한 느낌이 없는, 전혀 내가 만족된 상태가 아닐 듯. 그런데 '행위를 받고 있다'라는 관점으로 보니까 '큐케'라고 하며 펠릭스가 쉬는 장면도 기쁘게 느껴졌다.
나의 경우는, 바닥에 지저분한 게 떨어져 있으면 치우고 싶어진다.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있어서 그 기분을 드러내서 ‘청소’라는 행위를 할 수 있다. 제 3자가 보면 그냥 ‘내가 청소하는 행위’로 보이겠지만, 그것 역시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어떤 행위를 받아서 나도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날 일하고 되게 뿌듯한 느낌이 있었다. 만족감이랄까. 도시락 가게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장으로 느껴졌다. 사실은 그렇게 살아가는 거구나. 무언가 ‘하고 싶다’라는 기분이 있고, 그게 실제로 실현된다 라는 감각이(관점이) 생긴 느낌.
Q. 구체적인 일상에서 주요한 테마들이 살펴진 느낌이다. 다녀와서 한국에서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스즈카에서 보낸 것처럼 집중해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 이런 생각은 있는데 그런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어디서 왜 산만해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청소하고 밥하고 보내는 일상에서도 충분히 '살펴본다'는 모드로 할 수 있을텐데.. 일상생활이랑 탐구하는 시간이 좀 분리되어있는 느낌. 하려고 하는 것을 하는데 있어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싶다. 혼자서 초점 맞추는게 나한테는 어려운 것 같다. 일단 인생코스 전까지 좀 집중해서 살펴보는 모드로 지내고 싶다.
Q. 앞으로 계속 살피고 있는 테마가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은 ‘마음껏 이야기한다’, ‘충분히 꺼내서 이야기한다’. 내 생각을 꺼내지 못한다던지, 기분을 표현하지 못한다던지,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경계심’인 것 같다. 실제로 어디에서 막혀있는지 모르는 상태인 경우가 많은데 그런 걸 보고 싶다.
또 하나는 ‘만족한다’라는 테마. ‘내가 생각하는 만족된 삶을 살고 싶어’라고 할 때 어디에 초점을 두는 것인지. 그런 게 정말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일까 더 알아보고 싶다. 인간으로서의 본래의 만족. 그런 걸 스즈카 다녀오고 나서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인간사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
당장은 아니지만 한번 살펴가고 싶다는 테마는, 사회에서 해받아서 자라는 아이들이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투어하면서 많이 남았다. 어떤 사회가 좋을까? 어떤 사회에서 자라면 정말 그 사람이 그 사람답게 자랄 수 있을까? 그런 걸 같이 찾아보고 만들어나가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다.
- 금자 인터뷰 끝
행위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결국 행위는 드러나는 거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받는다라는 느낌으로 일상에서 보고 들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함께 인터뷰어로 참여한 재원은 처음 인생코스를 들었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전 세계가 내 집이구나 (풋)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고 했다. '나' 혹은 '내것' 이라고 하는 것도, 무수한 사람들의 행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구나, 그 행위 아래 사람들의 마음이 들어있구나. 이런 것들이, 실제 있는 것들이 보여지는 인생이라면 정말 풍요롭겠구다.
금자의 인터뷰를 하며 '이번' 코스와 체류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듣고 글로 정리하면서는 다만 '이번' 코스 뿐 아니라, 앞서의 일본 유학에서 금자가 접한 것들, 한국에 돌아와서 살피면서 알아진 것들, 그리고 더 이전, 우동사에 오기전 금자가 생각해온 것들을 듣는 것이구나. 또한 금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금자가 스즈카에서 만난 사람들이 녹아있고, 우동사에서 함께 지낸 사람들, 그 이전에 금자 인생을 있게 한 가족, 친구들이 금자의 이야기 속에 있구나 싶었다. 금자 뿐 아니라 다정, 수정이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그 사람의 역사와 만나는 일이라는 게 새삼 느껴졌다. 참, 소중한 시간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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